[10월] 고분자화학 - 일상 속 고분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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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닐을 비닐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 제가 퀴즈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비닐봉지’를 영어로 하면 무엇일까요?”
정답은 바로 ‘plastic bag(플라스틱 백)’입니다.
‘아니, 비닐봉지라면서 갑자기 플라스틱이 왜 나와? Vinyl bag 아냐?’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어사전에 vinyl bag 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plastic bag’ 이 올바른 표현이라며 자동으로 수정된 단어가 검색됩니다. 구글에 vinyl bag 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여 검색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비닐봉지 대신에, 그 유명한 JYP의 비닐옷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가방들의 이미지가 나오고요.
아니, 도대체 왜 우리나라에서는 ‘비닐’이라는 외래어로 잘만 불리는 것을, 정작 영어권 국가에서는 ‘비닐’이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요? 영어권 사람들은 비닐을 비닐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제한이라도 받은 걸까요?
▶ 비닐 없는 비닐, 고무 없는 고무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분자’라는 물질들이 무엇인지부터 알고 가는 것이 좋겠네요. 고분자는 책마다, 학자들마다 정의를 약간씩 다르게 하지만 보통은 작은 분자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량이 아주 크고 일정하지 않은 물질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고분자들은 ‘단량체’라고 불리는 작은 분자들이 결합을 통하여 수없이 연결되어있는 ‘중합체’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어떤 단량체들이 어떤 순서로, 어떤 방향으로 연결되어있는지에 따라서 중합체의 성질도 달라지기 때문에, 보통 고분자의 이름에는 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비닐봉지’라고 부르는 것은 ‘폴리에틸렌(PE)’ 혹은 ‘폴리프로필렌(PP)’라는 고분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학에서 ‘비닐(vinyl)’은 에틸렌이라는 물질에서 수소 하나가 떼어진 구조를 가리키는데요,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작 그 에틸렌이 단량체인 PE는 ‘비닐’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때문에 'vinyl'이라는 단어가 이 PE나 PP를 지칭하지는 않는 것이죠.
그렇다면 영어권의 ‘vinyl’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역시 다양하지만 보통 ‘염화비닐’이라는 물질이 단량체인 고분자 ‘폴리염화비닐(PVC)’을 지칭합니다. PVC라는 단어가 낯선 분들도 계실 텐데요, ‘비닐하우스’를 덮고 있는 투명한 덮개나 우리가 흔히 ‘고무대야’라 부르는 붉은 색의 대야가 바로 PVC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비닐봉지’에 비닐이 없듯이 ‘고무대야’에는 고무가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이죠?:)
그런데 우리 주변의 고분자는 ‘비닐 아닌 비닐’과 ‘고무 아닌 고무’만 있는 걸까요? 사실 우리의 삶에는 알게 모르게 다양한 고분자들이 숨어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고분자들에 대해 한 번 알아보도록 할까요?
▶ 옷장 속의 고분자
역사 연구에 따르면 인류는 이미 신석기 시대 때부터 도구를 이용해서 실을 뽑아내고 옷을 짜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수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은 다양한 동물의 털과 가죽들, 그리고 식물의 섬유들을 옷감으로 활용하였죠. 그러던 1935년, 미국의 화학자 월러스 흄 캐러더스에 의해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이 이루어집니다. 인류 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이 개발된 것이죠.
나일론은 ‘아마이드 결합’이라고 불리는 결합으로 이어진 폴리아마이드 고분자로, 신축성이 좋고 질긴 것이 특징입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스타킹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고, 클래식기타의 줄로 사용되기도 하죠. 단량체들이 이어져 있는 방식에 따라 나일론도 여러 종류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사용되는 곳도 다릅니다. 캐러더스가 처음 합성한 나일론-6,6의 경우 ‘아디프산’과 ‘헥사메틸렌다이아민’의 중합으로 만들어지는데요, 워낙 합성이 간단한 만큼 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이라면 1학년 때 듣게 되는 일반화학실험 과목에도 단골로 등장할 정도랍니다.
캐러더스가 속해있던 듀폰(Dupon) 사(社)가 나일론의 상업적 판매로 큰 돈을 벌어들인 이후, 합성섬유의 발전은 눈부신 속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물질은 단연 ‘폴리에스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구성이 강하고 물에 잘 젖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면과 함께 코트와 바지, 셔츠, 스포츠웨어를 가리지 않고 사용되는 섬유이죠.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아마이드에 이어서 또 ‘폴리’가 등장했는데, 혹시 이쯤 되면 ‘폴리에스터’가 ‘에스터’라는 부분이 포함된 중합체라는 것을 눈치채진 않으셨나요?? ‘에스터’가 어떤 한 물질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구조를 가지는 물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 때문에, 폴리에스터도 사실 종류가 여러 가지인데요. 옷에 쓰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우리 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속칭 ‘페트(PET)’가 폴리에스터 고분자의 일종입니다.
그런가 하면 특수한 기능을 가지는 복장에 쓰이는 특수한 섬유들도 개발되었는데요. 앞서 언급한, 나일론을 개발해서 떼돈을 번 듀폰 사가 독점하다시피 공급하고 있는 또 다른 섬유가 있는데요, 바로 케블라®입니다. 케블라®는 나일론과 같은 폴리아마이드 중에서도 특히 불에 강하고 튼튼한 강도가 특징인 ‘파라-아라미드’의 상품명인데요. 케블라를 겹겹이 쌓은 옷은 가벼운 무게에 비해 총알도 뚫지 못할 정도의 강도와 300℃가 넘는 온도에서도 안정적인 내열성을 자랑하여 방탄모와 방탄복, 소방복 등의 보호 장비에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어텍스®라는 원단도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이것 역시 듀폰(…)사가 개발한 특수 섬유입니다. 절대 제가 이 회사의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게 아니고 (저의 바이럴 마케팅 같은 건 필요하지도 않을 만큼) 워낙 거대한 기업이고 특히 합성섬유 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보니 이 파트에선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 회사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고어텍스®는 ‘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라 불리는, 탄소와 플루오린으로 이루어진 단량체를 수없이 연결시킨 중합체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라는 고분자를 열을 가해서 쭉 늘려놓은 원단인데요, 원단 표면에 아주 미세한 크기로 무수히 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어서 통풍과 수증기 배출은 잘 되지만, 이 구멍이 액체 상태의 물이 흘러들어올 만큼은 크지 않아서 방수 기능까지도 있는 아주 특이한 원단입니다. 그 덕분에 통풍과 방수, 그리고 땀 배출이 필수적인 등산화, 등산복, 전투화 등에 아주 많이 쓰이는 원단입니다.
▶ 식탁 위의 고분자
그런데 이 고어텍스®라는 원단의 원료인 ‘폴리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이라는 고분자도 사실은 듀폰에서 개발한 것으로, 본래의 이름보다는 상표명으로 많이 불리는데, 그 상표명이 바로 ‘테플론’입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개발한 물질도 아니면서 ‘테플론’이라는 상표명을 자신의 이름에 당당히 집어넣은 기업이 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주방기기 업체인 ‘테팔(Tefal)’입니다.
여러분들은 ‘테팔’의 주력 상품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 많은 분들이 프라이팬을 떠올리실텐데요, 실제로 테팔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프라이팬에 테플론을 코팅한 제품을 가장 먼저 개발하여 히트를 친 것을 기반으로 성장한 회사입니다. 그러니 테플론(Teflon)과 알루미늄(Aluminum)의 앞글자를 딴 단어가 기업명이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죠?
이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조리도구는 물론이고, 플라스틱 식기와 포장 용기, 남은 음식을 덮어놓는 비닐랩까지 우리가 식탁 위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집기들이 고분자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사실, 식탁 위에는 이외에도 굉장히 중요한 고분자들이 숨어있는데요. 바로 인간의 3대 영양소라고 불리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바로 그것입니다.
탄수화물은 탄소와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고리 형태의 물질인 ‘당’으로 구성된 물질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학교 과학 시간에, 혹은 가정 시간에 열심히 수업을 들으셨다면 인간은 주된 에너지원으로 ‘당’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배운 기억이 나실텐데요. 에너지원인 당을 효율적으로 저장하기 위해서, 생물은 작은 분자인 당을 ‘글라이코시드 결합’이라는 결합을 통해 수없이 이어붙여서 커다란 고분자 형태로 만듭니다. 우리가 흔히 ‘전분’이라고도 부르는 ‘녹말’이라는 고분자는 식물이 주로 쓰는 물질이고, 동물은 글리코겐이라는 형태로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것을 선호하죠. 두 물질 모두 단량체인 포도당이 ‘알파 1,4-글라이코시드 결합’을 통해 중합되면서 일차원 사슬을 형성하는 동시에 ‘알파 1,6-글라이코시드 결합’을 통해 사슬 중간에서 가지를 치듯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데요. 이 ‘알파 1,6-글라이코시드 결합’을 통한 곁가지의 비율에 따라 녹말인지 글리코겐인지 구분이 됩니다.
한편 인간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는 탄수화물 고분자도 있는데요, 포도당이 ‘알파 1,4-글라이코시드 결합’이 아닌 ‘베타 1,4-글라이코시드 결합’이라는 방식으로 사슬처럼 이어질 경우에는 녹말이나 글리코겐이 아닌 ‘셀룰로오스’라는 고분자가 만들어집니다. 익히지 않은 채소에 특히 많이 들어 있는 이 고분자는 흔히 ‘식이섬유’라고 부르는 영양소의 대표 주자이기도 한데요. 이 고분자는 인간이 스스로 소화해낼 수가 없어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없는 대신, 장의 기능을 활발히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단백질 역시도 대표적인 고분자입니다. 지난번 포스팅(프로탁과 생화학 관련 포스팅)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고 불리는 단량체들이 ‘펩타이드 결합’을 통해 연결되어있고,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독특한 3차원적인 구조를 가지는 물질입니다. 단백질을 만드는 데에 사용되는 아미노산만 하더라도 20 종류가 넘어가고, 같은 아미노산이라 하더라도 연결되는 순서와 3차원적 배열에 따라 구조가 달라지므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단백질들이 존재합니다.
지방은 단량체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는 중합체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큰 분자량을 가지고 있어 고분자로 분류됩니다. 지방에도 여러 종류가 존재하지만, 우리 몸에 특별히 중요한 물질은 ‘인지질’과 ‘콜레스테롤’입니다. 인지질은 글리세롤을 뼈대로 탄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지방산 사슬이 두 개 뻗어있고, 나머지 한쪽에는 인산과 알코올이 연결되어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죠. 콜레스테롤은 네 개의 탄수화물 고리를 기본 구조로 삼는 물질들을 일컫는데요.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서 “콜레스테롤은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세포막의 유동성을 조절하는 기능은 물론 각종 호르몬의 주요 구성 성분이 되므로 어느 정도 양은 반드시 섭취를 해주어야 하는 물질입니다.
▶ 여가 속의 고분자
글 서두에서 제가 영어권에서는 ‘비닐봉지’를 ‘vinyl bag’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했던 것, 기억하시나요? 그 바로 다음에 영어권에서 ‘vinyl’은 PVC를 의미한다고 설명을 드렸었는데, 사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물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레코드판’이죠.
옛날 음악과 가수, 그리고 레트로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네모반듯한 판에 들어 있는 얇은 검은색 디스크를 보셨을 겁니다. ‘턴테이블’이라 불리는 기기에 이 레코드판을 장착하고 작동시키면, 레코드판 위에 새겨진 아주 미세한 소리골들을 턴테이블의 바늘이 훑고 지나가면서 판에 기록된 음악들이 연속적으로 재생되는데요. 반대로 이야기하면, 레코드판은 무수히 많은 소리골들을 새기고 바늘이 이것을 훑고 지나가더라도 망가지지 않은 재질로 만들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 끝에 마침내 그 재료로 선정된 것이 바로 PVC 였던 것이죠. 즉, 레코드판 자체가 ‘비닐’로 만들어진 판이기 때문에 ‘vinyl’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새로운 고분자는 우리가 보고, 듣고, 즐기는 것까지도 더욱 발전시켜주었습니다. 당구공의 경우 본래 가격이 높은 상아로 만들어졌으나, ‘니트로셀룰로오스’라는 고분자에 장뇌를 혼합하여 만든 ‘셀룰로이드’라는 플라스틱이 개발되면서 더욱 값싸고 튼튼한 당구공이 개발될 수 있었죠. 세계 최초의 ‘열가소성 합성수지’인 셀룰로이드의 개발은 영화와 사진 산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건판’의 자리를 셀룰로이드로 만든 필름이 대체하였습니다. 다만 이 물질의 경우 워낙 불에 잘 타는지라, 위험성이 높아서 요즘에는 더욱 발전한 다른 플라스틱들로 대체되는 추세입니다.
골프공도 본래는 나무나 석재로 만들어졌는데요. 현재는 이온과 중성의 사슬이 서로 얽혀있는 플라스틱인 ‘아이오노머’가 가장 안쪽에 들어있고, 부타디엔 단량체가 중합된 고분자인 ‘폴리부타디엔’이 중간층에 끼어있으며, 단량체들이 우레탄 결합으로 이어져 있는 ‘폴리우레탄’ 같은 엘라스토머 고분자가 바깥층을 덮고 있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탄성력이 있는 고분자들로 이루어진 덕분에 반발력도 커지고 무게는 더 가벼워져 훨씬 더 먼 비거리를 날아갈 수 있게 된 것이죠. 이외에도 다양한 스포츠 장비들이 고분자 덕분에 성능이 대폭 향상되었습니다.
한편 우리가 늘 손에 쥐고 사는 스마트폰 역시도 수많은 고분자 덕분에 세상에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신제품이 출시되어 큰 이슈를 끌고 있는 ‘폴더블 스마트폰’이라는 폼팩터는 사실상 고분자 덕분에 개발될 수 있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죠. 일반적인 스마트폰과 달리 폴더블 스마트폰의 기판은 강도와 내열성, 본래의 형태로 돌아오려는 성질과 더불어 유연하게 휘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폴리이미드’라는 고분자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덕분에 다양한 부품들이 올려져 있는 기판을 파괴하지 않고도 접었다가 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흠집이 나더라도 스스로 이를 메울 수 있는 ‘자가 치유 고분자’나 고분자 발광다이오드(PLED)에 활용될 수 있는 고분자 등 다양한 첨단 고분자들은 보다 혁신적이면서도 뛰어난 성능의 스마트폰이 탄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 KRICT, 새로운 ‘국산’을 만들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주요한 사회적 사건을 꼽으라 한다면,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필두로 하여 시작된 한일 무역분쟁과 반일 불매운동의 열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당시 옷이나 화장품과 같은 소비재는 물론이고,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불화수소나 감광액, 폴리이미드 등과 같은 재료 역시도 일본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그런데 다양한 첨단 산업에 활용되는 핵심 소재이면서도 세계적으로 일본이 독과점에 가깝게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물질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바로 ‘환형올레핀 고분자 소재’인데요. 고분자 플라스틱 중에서도 유전율이 낮고 수분 흡수가 덜 되는 편이라 디스플레이는 물론 5G 통신 기기의 기판이나 의료 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이 가능한 물질이라고 합니다. 현재 이 물질과 연관된 시장의 크기는 1조 원 이상의 가치로 추정되지만, 환형올레핀계 고분자 소재를 상용화한 곳의 대부분이 일본기업인지라 국내 수요는 일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 7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국내 연구진이 기존 환형올레핀 고분자 소재의 단점을 보완하면서도 열에 강하고 필름 등의 형태로 변형이 용이한 새로운 환형올레핀 고분자 소재를 합성하는 데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해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국산 환형올레핀 고분자 소재의 제작 가능성이 열린 것이죠.
이러한 연구성과는 바로 한국화학연구원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의 김용석·박성민 박사님의 연구팀에 의해 이루어졌는데요, ‘고기능고분자연구센터’는 고분자 중에서도 정보전자 산업 및 친환경 산업 등 유망한 산업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고부가가치 고분자들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 고분자화학 – 우리는 고분자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한편 한국화학연구원의 탄소자원화연구단은 활용 가치가 낮아진 플라스틱을 더욱 가치 있는 물질로 재탄생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함과 동시에 폐플라스틱 재활용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 활동도 함께 펼치고 있습니다. 또 바이오화학소재연구단은 생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을 합성하거나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미생물들을 찾는 연구도 진행하여 생분해성 마스크 필터를 개발하는 성과도 거두었죠.
이처럼 한국화학연구원 내에서도 고분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고분자에 대한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화학의 분야를 바로 ‘고분자화학’라고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분자들의 물리/화학적 특성들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을 정립하고, 새롭고도 유용한 고분자들을 합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야이죠.
앞서 살펴보았듯 우리는 수많은 고분자들에 둘러싸여 있고, 고분자의 도움을 받으면서 보다 편리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고분자들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기도 하죠. 수많은 버려진 폐플라스틱들이 환경 오염의 심각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히 ‘고분자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는 현대 사회.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고분자들이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진보시켜줄까요? 또 우리 인류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의 행성을 앓게 하는 골칫덩이 고분자들을 처리해낼까요?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는 고분자화학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참고 자료]
- 마크 미오도닉 저, 윤신영 역,『사소한 것들의 과학』, MID: 서울 (2016)
- 진정일,『진정일 교수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양문: 서울 (2008)
- 박종석 et. al. 『고등학교 화학 1』, 비상교육: 서울 (2020)
- Dupont, "Kevlar® 소재", Dupont, 수정일 미상.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s://www.dupont.co.kr/kevlar/what-is-kevlar.html
- Team Gore, "고어텍스 멤브레인이 무엇인지, 어떤 원리인지, 왜 필요한지 알려드립니다.", GORE-TEX, 2020년 2월 3일 수정.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s://www.gore-tex.com/kr/useful-contents/the-gore-tex-membrane
- Stryer, L. et. al. 저, 박인원 et. al. 역, Stryer 생화학 (8판), 범문에듀케이션: 서울 (2016)
- 손준영, "[월간중앙] MZ세대의 LP 사랑", 월간중앙, 2021년 7월 25일 수정.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13287#home
- 백지현, "골퍼들이 모르는 골프공의 비밀", 미디어펜, 2016년 9월 20일 수정,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www.mediapen.com/news/view/188260
- 경계영, "대중화하는 폴더블폰에 투명 PI필름 시장도 '쑥쑥'", 이데일리, 2020년 10월 20일 수정,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977846626000488&mediaCodeNo=257
- 한국화학연구원 과학확산실, "일본 등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고 있는 고내열 투명 플라스틱 소재 국산화 시동", 한국화학연구원, 2021년 7월 28일 수정, 2021년 10월 18일 접속, https://www.krict.re.kr/bbs/BBSMSTR_000000000687/view.do;jsessionid=54365A0FE028004D5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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