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보는 화학 화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폐페트병으로 만든 등산용 재킷

진정일  2022-07-11 VIEW : 622

용기의 변천 역사는 바로 재료의 역사다. 토기, 목기, 청동기, 자기, 유리, 철기 등의 여러 가지 재료로 용기를 만들어 사용한 인류문명의 발달사는 기술의 변천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리빛 철기 다음으로 나타난 재료는 플라스틱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플라스틱 소비량이 계속 증가하여, 1980년대 중반부터는 철재 소비량을 능가했기 때문에 현대를 플라스틱시대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되지 못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돈도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각종 크레디트카드가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졌음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폴리에틸렌(PE), 폴리스티렌(PS)과 폴리염화비닐(PVC)은 우리가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 플라스틱이다. 그러나 이들로는 잘 깨지지 않는 병을 만들기에 부족한 면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새로운 플라스틱 재로인 페트(PET)에 익숙해졌으며, PET로 만든 병을 흔히 페트병이라 부른다. 요즘은 콜라병이나 식용유병 등 페트병이 너무 많이 사용되어 폐페트병 재활용이 세계적으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도대체 이 페트 또는 PET라는 재료는 무엇일까? 그 답을 말하기 전에 섬유 이야기를 좀 해보자. 확실히 지금은 무명, 양모, 비단 등 천연 섬유보다 합성섬유가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여성들의 스타킹 제조에 중요한 나일론, 물실크 제조나 겉옷감 제조에 사용하는 폴리에스테르, 인조털실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아크릴 섬유를 3대 합성섬유라 부른다. 그중에서 폴리에스테르 섬유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생산되는데, 이 섬유로 만든 직물은 잘 구겨지지 않고 해어지지도 않아 의류제품제조에 널리 쓰인다. 단, 수분을 잘 흡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어 내의 제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이 섬유제품을 다시 용융시켜 재가공하면, 잘 부러지지 않고 질긴 플라스틱 필름이나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카세트테이프나 비디오테이프의 원료가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원료와 같은 것이다. 이처럼 같은 고분자재료도 어떤 모양으로 가공하는지에 따라 성질과 용도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페트병 제조에 사용하는 폴리에스테르와 합성섬유로 사용하는 폴리에스테르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얼마 전 한 회사가 페트병을 수거해 섬유형태로 재가공한 후 등산용 재킷을 만들었다는 뉴스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성인용 등산재킷 하나를 만드는 데 폐페트병이 15개 정도 필요한데, 폐품으로 만든 등산재킷의 촉감, 보온성과 탄력성 등이 일반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제품에 뒤지지 않는다고 회사측은 주장했다. 폐품의 재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권장할 일이지만 페트병 수거와 세척, 재가공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상 공정으로 만든 의류보다 값이 더 높아지는 단점이 있다. 앞으로 재활용 과정에서 좀더 비용 절감이 된다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플라스틱의 공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페트병만 해도 자그마치 연 6만 톤 정도나 되며, 매년 그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기술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것이다. 폐페트병으로 만든 등산복 차림의 남녀노소가 북한산과 도봉산을 뒤덮게 될 날을 기다려본다.

※  본 내용은 한국화학연구원-서울경제 공동기획 '재미있는 화학이야기'에서 발췌하였으며, 서울경제와 협의를 거쳤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