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속한 감기, 원망스러운 감기약
감기는 매우 복잡한 증상을 폭넓게 말한다. 간질간질한 목감기, 콧물이 줄줄 끊이지 않는 콧물감기, 코막힘 감기, 연거푸 마른기침이 나는 감기, 목이 붓고 통증이 심한 감기, 열이 펄펄 나고 두통을 수반하는 감기 등. 이런 증상은 보통 며칠에서 몇 주간 계속된다. 감기는 증상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지만 사실 지난 50여 년간 감기약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으며, 매년 우리는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헛기침이나 목이 간질거리는 감기에는 덱스트로메토르판이나 코데인 같은 진정제가 들어 있는 시럽을 먹는다. 이 진정제들은 기침을 억제하는 뇌 수용체에 작용하는 것 같다. 기침은 몇 초 동안에 일어나는 일련의 반사작용이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으로 신경과학자들도 이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덱스트로메토르판은 D-이성질체로 L-형과 달라 중독성이 없으므로 모르핀 같은 부작용도 없다. 현재 덱스트로메토르판은 N-메틸-D-아스파테이트 수용체에 작용해 기침유발을 억제함으로써 기침을 덜하게 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카디프대학 감기연구센터(CCC)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들 감기약은 위약에 비해 기침빈도 감소에 10~15퍼센트 정도밖에 더 효과적이지 않다. 즉 뜨거운 레몬-꿀 드링크나 매콤한 드링크제로 입에서 타액생산을 돕거나 코나 기관지 등의 통풍로에 점액분비를 증진해도 유사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점액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잡기 때문에 감염을 막는 수단이 된다. 또한 매운 카레를 뜨겁게 먹어도 침이 많이 나오며 기침 증상이 줄어든다. 양념 중에도 항생제 효과나 항바이러스성을 지닌 것이 많은데 마늘과 고추가 그 대표적 예다. 한편 꽉 막힌 코감기에는 흔히 콧구멍에 스프레이를 분무하는데, 여기에는 옥시메타졸린과 자일로메타졸린 같은 화합물이 들어 있다. 이 화합물들은 교감신경계 수용체를 활성화시켜 혈관수축을 컨트롤하는 아드레날린 혹은 노르아드레날린을 모방한 신경전달물질이다. 흔히들 점액이 코를 막는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맥과 혈관이 부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화합물의 혈관 수축작용도 수면시간 정도나 지속될 뿐이며, 때로는 막힌 코뚫기 처방이 점막을 팽윤시켜 코막힘 현상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이런 부작용은 감기약에 들어 있는 방부제 때문에 발생한다. 내복약으로는 에페드린, 슈도에페드린, 페닐에피린 등이 있는데 혈관 모두를 적셔야 하기 때문에 효능이 떨어진다. 더욱이 이 약들은 고혈합 혹은 심장과 혈관에 관계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두통과 목이 아플 때의 감기약에는 아스피린, 파라세타몰, 이부프로펜 등의 진통제가 들어 있다. 감기로 인한 염증은 체내에 프로스타글란딘류와 브래디키닌 펩티드를 생기게 하는데, 이들이 통증신경말단을 자극해 목 아픔, 두통, 근육통을 유발한다. 목이 아픈 감기의 진통제로는 벤조카인과 벤질알코올이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천연물 중에는 감기약이 없을까? 감기연구센터의 론 에클스 박사는 멘톨을 특히 좋아한다. 멘톨이 막힌 코를 뚫어주지는 못하지만 콧속의 감각신경을 자극해 코막힘이 뚫린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멘톨은 콧속의 감각신경을 자극하여 호흡 패턴을 바꾸게 한다. 따라서 유아의 야간 처방으로도 유익하다. 또한 멘톨은 국소마취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두염 치료 목캔디로도 널리 쓰인다. 면역계에 필수적인 아연(Zn) 보충이 감기에 효과적인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서구에서는 에키나시아(Echinacea)라는 미국 토착 자주색 꽃의 치료효과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 꽃의 추출물이 면역계를 자극하여 감기나 감염을 물리친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의학계의 논란거리로 대두되었다. 어떤 성분이 약효를 보여주는지는 아직 분명치 않으나 면역계에 유익하게 작용하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어쨌든 아직까지도 신뢰할 수 있는 감기약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감기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니 안타깝기만 하다. 매년 찾아오는 야속한 감기에 약효 없는 감기약을 원망할 뿐이다. ※ 본 내용은 `진정일의 교실밖 화학이야기`에서 일부 발췌 하였으며, 저자와의 협의를 거쳤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