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와 함께한 소금
염소와 나트륨의 결정성 화합물인 소금은 그 짠맛으로 음식의 맛을 내거나 방부제로 쓰이기도 한다. 소금이 없으면 오랫동안 음식을 보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예수님도 세상 안에서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았는가. 소금은 조금 수수께끼 같은 화합물이다. 즉 소금은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지만, 지나치게 섭취하면 목숨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에 찌개나 장아찌 등 짠 음식이 많아서 소금 섭취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지금은 소금의 생산량이 많아져서 가격도 저렴해졌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소금은 매우 귀한 존재였다. 따라서 소금의 역사는 인류 문명사와 그 궤를 같이한다. 소금의 가치가 귀중하고 꼭 필요했기 때문에, 소금은 세계무역의 주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제재 및 인구이동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부터 소금은 중요한 무역상품이었다. 고재 이집트인들에게는 미라를 만드는 데 꼭 필요했기 때문에 소금이 매우 중요한 상거래 품목이었다.
에티오피아 다나킬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로마와 아랍 뿐 아니라 인도에까지도 수출이 되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600년경에 해안도시 오스티아
에커다란 제염소를 만들고, 로마까지 소금을 운송할 수 있는 간선도로 살라리아 가도를 건설했다. 이 때문에 로마의 주요 도로 중 하나는 현재도
살라리아가도(소금로, salt road)로 알려져 있다. 로마시대에는 소금이 관리나 군인의 봉급으로 기불되기도 했기 때문에 현물 급여를 뜻하는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은 봉급을 뜻하는 영어 샐러리(salary)에 아직도 남아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소금이 비싸 ‘백색금’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유럽의 도시 중 Salzburg, Halle, Hallerin, La Salle 등은 모두 소금과 관련된 이름으로
소금의 생산이 도시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도 소금과 관련된 지명이고, 터키의 투즐라도 소금생산에서
유래했다. 볼리비아의 살라 데 우유니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염전이 있었으며, 관광객이 머물 수 있는 소금 호텔이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근처
비엘리츠카 지하에 있는 소금 연무홀, 성당, 지하 호수 등은 수많은 관광객을 끌고 있다.
소금 무역은 사하라 사막이 가로막고 있던 남북 아프리카의 교류를 가능하게 해 이슬람 문화 전파에도 큰 몫을 했다. 사하라 사막 남부에 거대한
암염광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8세기경에 베르베르 상인들이 수천 마리의 낙타에 실어온 북아프리카의 곡물, 건과류, 직물과 연장들을 사하라의
소금덩이와 교환하여 북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에까지 소금을 전달했다. 니제르강 지류 사하라 사막 남쪽 끝부분에 있던 팀북투는 조그만 캠프촌에
지나지 않았으나 소금 교류 때문에 번성하여 16세기에는 주요 무역도시가 되었으며, 이슬람 문화 확장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곳에는 대학은 물론
거대한 사원, 탑, 왕궁 등이 있었을 정도였다.
소금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소금을 위한 투쟁사도 종종 등장한다. 6,7세기까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베네치아는 가까운 해안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지중해 여러 나라에 팔아 항구도시로 번성했는데, 자기들이 갖고 있던 소금 전매권에 위협을 준다며 이웃 해안마을을 점력한 적이 있었다. 미국
독립전쟁 시 영국은 유럽과 서인도제도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소금무역에 대해 금수명령을 내렸으며, 미국 뉴저지주 해안의 제염소를 파괴하였다.
또한 1864년에는 버지니아주의 솔트빌을 점령하여 남부 연합군은 물론 시민의 사기를 꺾기도 했다.
소금 소비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는 이미 기원전 2000년에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리스, 이집트, 시리아 등에서도 기원전부터 시행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도 중세부터 소금 소비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으며 프랑스의 소금 세금은 매우 유명하다. 프랑스 혁명이 절정에 이른 1790년에 소금
세금제도가 폐지되었으나,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전에 필요하다며 1805년 다시 부활시켜 제 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계속되었다. 영국은 자국의 소금
세금제도는 1825년에 폐지했으나 식민지 인도에서는 1930년 간디의 소금제도 폐지 행진 후에야 이를 폐지했다. 또한 영국은 종종 인도 내에서의
소금 생산은 제한하고 영국으로부터 소금을 수입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지금은 빙판길을 녹이느라 소금을 뿌릴 정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지만 소금의 역사는 분명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실로 소금은 인간에게 중요한
화합물이다.
※ 본 내용은 `진정일의 교실밖 화학이야기`에서 일부 발췌 하였으며, 저자와의 협의를 거쳤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