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미국의 고무전쟁
전쟁이 발발할 때는 항상 정치적·경제적·사회적·역사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집단이 갖는 한결같은 공통점은 승리에 대한 자신감이다. 히틀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엄청난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비교적 쉽게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더욱이 일본이 아시아 지역에서 혈맹 노릇을 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 자신감은 더욱 컸다. 그에게 확신을 주었던 또 다른 요인은 독일 과학의 힘이었다.
독일은 193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합성고무의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즉 나트륨을 개시제로 사용하여 부타디엔과 스티렌 혼합물을 공중합시킴으로써 부나-S 고무를 제조했다. 이 고무는 부타디엔에서 ‘bu`, 나트륨에서 ’na`, 스티렌에서 ‘S`자를 따와 부나-S라고 이름 지었으며, 스티렌 대신 아크릴로니트릴을 사용한 고무는 니트릴의 첫 글자를 따 부나-N이라 명명하였다. 자국의 기술력으로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군용 자동차와 전쟁용 타이어 제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히틀러의 자신감을 더욱 키워주었다.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1939년에 독일의 합성고무 생산 능력은 연 2만 톤 이상이었다.
한편 미국의 사정은 매우 딱했다. 일본이 1941년 진주만을 공격하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점령하면서 천연고무 수출을 중지시켰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합성고무 생산 능력이 없었을 뿐더러 천연고무의 비축량도 얼마 되지 않았다. 겁에 질린 미국은 서둘러 정부차원에서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해 합성고무 개발에 나섰다.
엄청난 자본과 미국 과학기술의 힘이 짧은 시일 내에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1942년에는 2만 톤의 합성고무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3년에는 독일보다 두 배 정도 많은 합성고무 생산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정부가 합성고무의 기술개발에 앞장섰기 때문에 이때 개발한 부타디엔-스티렌 고무를 정부(government)의 첫 글자 ‘G’, 고무(rubber)의 첫 글자 ‘R’, 스티렌(styrene)의 첫 글자 ‘S`를 따 GR-S라고 불렀다. 미국이 이 합성고무의 개발에 쏟아 부은 자금이 당시 돈으로 10억 달러나 되었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투자였다.
※ 본 내용은 `진정일의 교실밖 화학이야기`에서 일부 발췌 하였으며, 저자와의 협의를 거쳤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