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보는 화학 화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灰(회)의 回(회)(Ⅰ)

 2022-07-11 VIEW : 1106

방 한가운데 작은 화로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군밤이나 감자를 구워 먹는 장면은 과거 시골에서 익숙한 풍경이었다. 화롯불은 가족 간 유대감을 강하게 하는 역할과 함께 방안의 공기를 데우는데 한 몫을 해왔다. 검붉던 숯불은 하룻밤이 지나면 회색빛의 '재[灰]'로 변하게 된다.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보이는 재가 향하는 곳은 화장실이다.

 

 

농가의 화장실은 창고처럼 넓다. 화장실의 한 쪽에는 왕겨 더미가 자리하고 있고, 다른 편에는 잿더미가 있다. 예상과 달리 재는 생활 속에서 여러모로 쓸모 있는 물질로 귀한 대접을 받아왔다. 이런 재의 다양한 쓰임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재는 농작물 재배 시 밑거름으로 사용된다. 봄철 화장실의 인분과 왕겨, 마른 풀 등과 재를 혼합하여 발효시킨 후 밭의 흙과 골고루 섞어준다. 이는 농작물에게 유기물과 미네랄(무기물)이 모두 포함된 '완전식품'이 된다. 재는 농작물에게 미네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토양의 물 빠짐을 좋게 만들며, 농작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어 뿌리 썩음병을 방제하는 데도 효과가 있다.
재는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를 없애는데 사용된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재를 뿌리면 화장실의 고약한 냄새를 줄여 파리가 꼬이지 않는다. 실제로 재를 뿌린 인분은 딱딱해져서 구더기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다음으로 재는 천연 농약으로 사용된다. 짚이나 풀, 나뭇가지 등을 태워 만든 재를 초목회라고 하는데 초목회에 물을 넣어 우려낸 맑은 물을 잿물이라고 한다. 잿물을 농작물의 잎이나 줄기에 뿌려주면 식물의 표면에 알칼리성 막을 형성하여 진딧물이나 노린재 등의 해충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초목회 가루를 밭의 고랑 사이에 뿌려주면 토양 속 해충의 접근을 차단해준다. 특히 뿌리구더기의 접근을 막아주어 농작물의 뿌리를 보호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재의 무기질 성분은 퇴비로도 이용되니 땅과 몸을 살릴 수 있는 일석이조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는 살균제로도 사용된다. 봄철에 감자를 심을 때 싹이 난 감자의 주변을 잘라 심는다. 이때 자른 면을 그대로 두고 심으면 세균 때문에 감자가 썩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른 면을 살균해서 심어야 하는데 이때 재가 이용된다. 감자의 자른 면에 재를 묻혀 심으면 재가 살균작용을 하여 감자가 상하는 것을 예방해 준다. 또한 이를 응용하여 사람의 가벼운 상처나 모기 같은 벌레에 물렸을 때 재를 발라 약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항아리를 소독할 때 볏짚에 불을 붙여 살균하기도 하는데 이 때 형성된 재가 살균효과를 더 크게 해준다.
그렇다면 재에 있는 어떤 성분이 이런 작용을 하게 하는 것일까?
30여 종의 원소들로 구성된 식물을 태우면 비금속 원소인 탄소(C), 수소(H), 산소(O), 질소(N) 등은 산소와 결합하여 기체로 날아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금속 원소들과 비금속 원소의 일부가 산화물의 형태로 남는데 여러 산화물들이 혼합되어 남겨진 것이 재이다. 재의 성분에는 산화칼륨(K2O), 산화나트륨(Na2O), 산화칼슘(CaO), 산화마그네슘(MgO), 산화철(Fe2O3) 등과 같은 금속 산화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들은 염기(알칼리)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재가 나타내는 효능은 대부분 재의 염기성과 관련이 있다. 염기를 뜻하는 '알칼리(alkali)'라는 단어도 '식물의 재'를 뜻하는 'al qualja'에서 유래되었다.
그렇다면 염기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 것일까?
염기는 쓴맛이 나며, 손에 묻으면 미끈거리는 특징이 있다. 또한 신맛을 내는 '산'과 만났을 때 산의 성질을 중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산성화 된 토양에 재를 뿌려주면 알칼리성 토양으로 만들어 토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밑거름에 함께 사용하면 토양과 작물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염기는 세포막을 파괴하는 성질이 있다. 세균이나 해충이 염기에 노출되었을 때 세포막을 녹이기 때문에 감자농사를 지을 때 감자를 자른 면이 균-균의 바깥 부분은 세포막으로 되어 있다.-의 공격을 받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또한 재래식 화장실에 재를 뿌리면 염기성분이 화장실에서 냄새를 만들어 내는 물질인 암모늄이온()을 재빨리 변화시켜 악취가 지속되지 않게 한다. 또한 벌레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독의 성분은 대부분 '산'이므로 벌레 물린 곳에 재를 바르는 것은 벌레의 독을 중화시키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재의 염기성은 한지를 만드는 데에도 이용된다. 보통 종이는 산성조건에서 만드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분해되어 변질된다. 이는 종이의 성분인 셀룰로오스가 산에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종이가 누렇게 변하게 되어 100년 이상 보존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지를 만들 때는 닥나무를 잿물에 삶아 섬유를 뽑아내기 때문에 염기성 조건에서 시작한다. 셀룰로오스는 염기에 강하고, 염기는 산의 공격으로부터 종이를 보호하기 때문에 한지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그러나 재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재의 성분 중 산화칼륨(K2O), 산화나트륨(Na2O), 산화칼슘(CaO)은 강염기로 많은 양을 사용하면 오히려 토양의 익균에 해를 입힐 수도 있다. 또한 퇴비에 지나치게 재를 많이 섞으면 퇴비 속의 주요 단백질원인 질소()를 감소시킨다. 그리고 어떤 벌레들은 염기를 독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벌레에 물렸을 때 무조건 재를 바르는 행동은 주의해야 한다.
다행히도 우리 선조들은 이런 위험성을 익히 알고 있어서 목적에 맞게 신선한 재와 오랫동안 묵힌 재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재를 오랫동안 묵히게 되면 강염기 성분들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탄산염으로 변하게 되는데 탄산염으로 이루어진 재의 성분은 온화한 염기(약염기)로 변하게 되어 순해진다.
현대에는 도시화로 인해 재를 보거나 사용할 일이 거의 없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는 이면에 수많은 재가 부산물로 나오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재[灰]를 단순 폐기물로 처리하기보다는 그 본연의 아름다운 쓰임을 다할 수 있도록 자연의 근원으로 다시 돌려놓는 回(회)는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녹색산업이 지향해야 할 좋은 예가되지 않을까 제안해 본다.

● 그림 및 사진 출처

1) 모닥불을 피운 후 남은 재 : http://en.wikipedia.org/wiki/Wood_ash
2) 재를 뿌린 인분 :http://captainharok.tistory.com/m/post/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