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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와의 전쟁

이종교 박사  2022-07-11 VIEW : 636

에이즈, 신종플루, 조류독감, 구제역 외에도 ‘이것도 바이러스 때문인가요?’라고 묻는 경우가 흔할 정도로 수족구병, 무균성 뇌수막염, 일본뇌염 등의 다양한 질병들이 바이러스들에 의해 발생된다.

유사한 증세를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일으키는 경우도 흔하다. A형 간염, B형 간염, C형 간염은 A형 간염 바이러스, B형 간염 바이러스, C형 간염 바이러스로 불리는 전혀 다른 바이러스들에 의해 유발된다. 감기와 뇌염, 눈 질환, 피부 질환 등도 그 예이다.

백신 개발로 소아마비와 천연두의 종식이 선포되었고 홍역과 유행성 이하선염 등 몇 가지 바이러스질병의 예방에 성공적인 경우도 있지만 유전자 변형이 빈번한 에이즈 바이러스, 혈청학적 유형이 100개가 넘는 일반 감기의 주요 원인인 라이노바이러스 등 많은 바이러스들에는 적용되지 않기에 이들에 대한 치료제의 개발이 필요하다 하겠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생물 테러에 이용될 가능성이 크고, 신규 감염이 없어 백신 투여가 중단된 소아마비 바이러스도 과거 감염자로부터 바이러스가 배출될 수 있어 치료제의 개발은 계속 요구되고 있다.


영양분만 있으면 증식할 수 있는 세균이나 곰팡이 등과 달리 바이러스는 증식을 위해서 숙주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몸통으로 둘러싸서 유전자를 보호하고 있는 입자 상태로 있다가, 적합한 숙주세포를 만나는 순간 생명성을 나타내어 세포 속으로 침입한 다음, 세포의 도움으로 유전자와 몸통을 이루는 물질들을 만들고 유전자와 몸통의 합체과정을 수행한다. 바이러스와 숙주와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기에 바이러스를 죽이게 되면 숙주도 손상을 입을 수 있어서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분야는 항생제나 항진균제보다 그 역사도 훨씬 짧다.

초기에 개발된 약물들은 주로 유전자 저해제로서 그 자체로는 약효가 없으며 세포 속에서 활성화를 거쳐 바이러스 유전자 복제를 저해했다. 이들 활성화 물질이 세포에 독성도 나타내었으며, 인체 복용 후 심한 부작용을 나타냈다. 최초 개발 20년 후인 1982년 개발된 허피스바이러스 치료제인 에이사이클로버(acyclovir)는 활성화 첫 단계에서 바이러스 특이효소가 필요하다. 따라서 감염된 세포와 달리 바이러스로 감염되지 않은 세포에서는 활성화되지 못한다. 약효도 우수하지만 이 선택성이 부작용을 낮추어 약물개발자는 노벨상을 수상했다.

바이러스와 숙주세포와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숙주를 건드리지 않고 바이러스 증식만 저해할 수 있는 약물의 개발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오랫동안 여겨졌다. 그러나 에이즈의 출현으로 바이러스 치료제뿐만 아니라 바이러스학 연구 분야에도 지대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전 세계 다국적 기업을 포함한 제약사들, 대학교, 공공 및 국가기관들이 에이즈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초와 응용연구에 집중하지만 그동안 이 바이러스가 얼마나 복잡하고 영리한가를 알게 하는 뼈아픈 경험들을 겪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도 크게 증진되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다수의 감염자들을 약만 매일 먹으면 일반 만성질환자와 같도록 해주는 치료법들도 개발되었고, 다른 바이러스질환 치료제 개발에도 큰 영향과 정보를 주었다.

좋은 약을 찾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되도록 많은 시료의 약효를 짧은 시간에 저렴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액체분주 체계도 소량화·자동화되었고, 다양한 분석장비와 함께 시험결과 자동분석법과 자동저장법도 개발되었다. 배양법이 잘 확립된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로봇을 이용하여 수만 개의 시료를 일주일 안에 조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렇게 발전된 기술들이 이제 여러 다른 바이러스들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고 있으며, 그 결과 다양한 후보물질들이 발견되고 있다. 과거에는 불가능하게 여겼던 한 약물이 두 종류 이상의 바이러스들에 대해 약효를 나타내기도 한다.

지금까지 개발된 바이러스 치료제로는 에이즈와 허피스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에 주로 국한되었지만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들의 개발이 가속화될 것이다. 약 개발을 위해서는 항바이러스 약효 이외에도 부작용과 약제 내성과 생체 내 약리동태 등이 연구되어야 하는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 하겠지만 앞으로 항생제와 같이 한 종류의 약물이 다양한 바이러스에도 듣는 치료제들이 개발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난치성치료제연구센터에서 항바이러스제 개발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바이러스시험연구팀에서는 다양한 바이러스들에 대한 항바이러스 활성 평가연구를 수행하고 있다.